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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성신고등학교 2학년 손정혁 |
나는 영구치가 다 나지 않았을 때부터 기계와 가깝게 지냈었다. 처음은 레고, 다음은RCX, nxt와 EV3로 그 다음 단계를 천천히 끈기 있게 밟아갔었다. 그런 와중에 어느새 내 관심사는 멤버십토토이 아닌 세계대회가 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두개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비슷하지 않았다. 나에게 세계대회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 소통할 뿐만 아니라, 대회가 끝난 후에도 계속 연락하며 지내는 로망을 의미했다.
그렇게1년에 두 번씩은 세계대회를 위해 노력했었다. 당시 나에게는 모든 것 위에 세계대회가 있었다, 그러던 중 카타르에서 개최한WRO의 Open Category부문으로 세계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같이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로망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세 대의EV3브릭을 연결한 데이지체인이 애를 먹이고, 차선책으로 준비해 간 블루투스마저 먹통이 되면서, 우리는 팀 부스 안에서 마치1인 독서실처럼 우리의 작품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또한 나에게는 매우 굉장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세계대회를 나갔다. FLL North American Open에서는 실컷 놀아도 보고, 인도에서 개최된WRO는 쏟아지는 관심과 질문을 받는 환희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쌓여갔다.
그러던 중 로보컵 챔피언쉽을 나가게 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로 시끄러울 때, 우리학교는 전국 뉴스를 오르내리고 있었고, 교장선생님의 승인을 받는 일은 차치하고도 자율학습을 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마음고생을 한 때문인지 이번 대회는 같이하는 팀원과 멤버십토토 뿐 아니라 대상포진이라는 녀석도 내 몸에 따라갔다. 고통은 상상이상이었고, 내 마음은 대회기간을 견디고 오리라는 생각뿐이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이 대회에서 내가 예전에 가졌던 세계대회의 로망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슈퍼팀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랜덤으로 공지되는 세 나라의 팀이 한조가 되어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슈퍼팀 발표는 대회기간5일중3번째 날에 발표되는데 엄청 떨렸다. 솔직히 말하면 생애 첫 소개팅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설레던 공지가 나왔다.
주제는 전 세계인의 놀이인 '얼음땡', 준비시간은48시간. 우리는 이탈리아팀, 헝가리팀과 한 팀이 되었다. 우리의 기대 속에 등장한 두 팀원은 안타깝게도 모두 남자였다. 단 한명도 빠짐없이.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친구들도boys라고하며 놀리고 지나갔다. 이탈리아팀도 헝가리팀도 실망한 건 매 한가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이탈리아팀은 팀원 한명이 아파서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그 날 하루를 아무 논의도 없이 보내버렸다.
다음날이 되었다. 다른 말로 대회 당일이었다. 급해진 우리 팀은 간단한 논의부터 시작했다. 예상대로 대화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우리 세 팀은 각기 다른 타입의 멤버십토토을 사용하고 있었고, 모두 영어권이 아니라 소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급한 마음은 영어의 벽을 허물어버렸고, 각자 맡은 영역을 묵묵히 제작하고 프로그램 했다.
우리가 수퍼팀 퍼포먼스를 위해 제작한 멤버십토토은 총4대였고, 그 중 두 대의 멤버십토토을 우리가 제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정말이지 공연5분 전까지 센서 오류를 잡아냈던 일은 우리들의 극적인 성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이렇게 완성되지 않을 것 같았던 프로젝트도 한순간에 완성되었고, 놀랍게도 우리 팀이 월드챔피언이 되었다.
48시간의 대회기간을 몇 시간으로 줄인 이탈리아 팀은 무책임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수상에 한몫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방대한 프로젝트를 단시간에 해낼 수 있는 프로젝트로 교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계 대회에 출전했다는 허세로 만들어진 배를 타고 산으로 가버릴지도 몰랐었다.
열정적인 우리 팀의 진우, 제덕, 원중이와 절제력을 가진 이탈리아팀, 그리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헝가리팀 모두는 월드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었다. 나는 이 대회를 통해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로망을 실현했다. 로보컵은 나에게 행운의 대회였다.▒ 손정혁ㆍ울산 성신고등학교 2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