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에 발표된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카드카운팅”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희곡에 처음 등장한 단어인 “카드카운팅”이라는 용어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용어의 확산 뿐만 아니라 카드카운팅의 형태나 활용 목적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끌어 올려 주었다.
문학과 연극에서의 관심은 영화 “메트로폴리스”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에서도 카드카운팅을 구현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1920년대 후반부터는 실제 카드카운팅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이때의 카드카운팅들은 기존의 오토마타들에 비해서는 분명히 진일보한 형태였지만, 현대에 생각할 수 있는 카드카운팅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던 수준이었다.
당시 만들어진 대표적인 카드카운팅들로 미국의 텔레복스, 일본의 카쿠텐소쿠, 영국의 에릭과 조지 등이 있다. “허버트 텔레복스(Herbert Televox)”는 다음 회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에서 1927년에 개발한 초기 형태의 카드카운팅이다. 외관은 사람 그림의 판재 형태로 조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특정 소리에 반응하여 몇몇 스위치를 조작하여 제어를 할 수 있는 장치였다.
1928년 일본 교토에서는 히로히토 왕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한 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오사카매일신문은 거대한 책상에 앉아 있는 인형 모양의 물체를 출품했다. 그것은 일본 최초의 카드카운팅이라 불리는 “가쿠텐소쿠(がくてんそく、学天則)”였다. 카드카운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 1920년이었기 때문에 일본 최초의 카드카운팅이라는 설명이 틀리지는 않지만, 오토마타와의 연관성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에서의 휴머노이드형 자동기계는 좀 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전에 많은 오토마타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면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 중 하나가 일본의 오토마타 “가라쿠리 인형(からくり人形)”이다. 가라쿠리는 17세기초 유럽의 시계 기술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나무를 깎아 톱니기어, 캠 등의 부속품을 만들고 태엽기술과 스프링을 이용해 만든 자동 작동 인형, 즉 일본의 오토마타였다. 초기에는 단순한 형태였고 귀족이나 부자들을 위한 고급 장난감으로 만들어졌지만, 축제나 기념일에도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그래서 가라쿠리를 제작하는 전문적인 장인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정교한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본에서는, 아주 다양한 가라쿠리가 만들어졌는데, 개인 소장용 가라쿠리, 가라쿠리 전용 극장의 공연용 가라쿠리, 축제에서 사용되는 수레 위에 설치되는 가라쿠리 등이 있었다. 그 중 좀 더 정교하게 제작된 것들은 대부분 개인 소장용 가라쿠리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차 나르는 가라쿠리와 활 쏘는 가라쿠리이다. 차 나르는 가라쿠리는 손에 찻잔을 올려 두면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하면서 손님이 있는 곳까지 이동하고, 손님이 찻잔을 집어 들면 가만히 기다렸다가 다시 찻잔을 손에 내려놓으면, 방향을 돌려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동작을 보여주어 상당히 발전된 기술을 보여주었다.
차 나르는 가라쿠리는 문헌으로만 전해지고 원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활 쏘는 가라쿠리는 원본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라쿠리다. 자동으로 4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이 가라쿠리는 태엽과 캠, 레버, 실 등으로 구성되고 제어되어 가라쿠리들의 작동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시켜주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전자 회사 중 하나였던 도시바의 설립자도 원래 가라쿠리 제작자였는데, 그는 활 쏘는 가라쿠리와 글씨 쓰는 가라쿠리를 개발했다. 이런 가라쿠리 기술은 훗날 일본의 산업에서 정밀 기계공업의 발전, 나아가 카드카운팅 공학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일본 최초의 카드카운팅 가쿠텐소쿠도 그 연장선 상에 놓여 있다.
높이 약 3.5m, 폭 3m의 가쿠텐소쿠는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왼손에는 영감등(靈感燈)이라는 등을 들고, 책상에 앉아 있는 형태의 카드카운팅으로, 오사카매일신문의 논설고문인 니시무라 마코토(西村真琴)가 제작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생물학자인 니시무라는 일본의 가라쿠리는 물론 미국의 스팀맨과 같은 자동 기계나 오토마타에 익숙했는데, 인간과 인공 기계간의 투쟁을 묘사한 “로숨의 유니버설 카드카운팅(R.U.R.)”에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R.U.R.”에서 묘사된 노예로 간주되는 카드카운팅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고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카드카운팅을 만들고자 했다. “学天則” 즉 하늘의 법칙 또는 자연으로부터 배운다는 의미의 이름을 그의 카드카운팅에 명명한 것도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
1926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가쿠텐소쿠는 같이 있는 카드카운팅새가 울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다가 영감등이 빛나면 눈을 뜨고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의 펜으로 글씨를 쓰는 동작을 했다. 니시무라는 미국의 증기기관 카드카운팅보다는 공압과 고무를 사용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팔을 움직이거나, 표정을 바꾸는 등 대부분의 동작을 고무 튜브의 공기압 변화 즉 공압을 동력으로 사용하고, 일부 제어에만 오르골과 비슷한 회전식 드럼으로 구현했다. 이것은 당시 대부분의 오토마타가 기계식 드럼과 캠으로 대부분의 동작을 구현한 것과 구별되는 점이었다. 교토박람회에서의 인기로 일본 내의 다른 박람회는 물론 중국과 독일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어디선가 가쿠텐소쿠는 사라졌고, 설계도가 전해지지 않았기에, 2008년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질 때는 당시의 사진과 니시무라의 글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같은 해인 1928년 영국 런던에서는 모델엔지니어협회 전시회 개막식에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카드카운팅이 등장했다. 카드카운팅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좌우를 둘러보며 4분간의 개회사를 연설했다. “로숨의 유니버설 카드카운팅”을 의미하는 “R.U.R”을 가슴에 새긴 주석 카드카운팅은 리차드(William Richards) 대위와 항공기 엔지니어 레펠(Alan Reffell)이 만든 영국 최초의 카드카운팅 “에릭(Eric)”이었다. 모델엔지니어협회 전시회 행사의 진행자였던 리차드는 원래 초청하려 했던 요크 공작(훗날 영국왕 조지 6세)이 참석을 취소하자,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다른 방법으로 카드카운팅 에릭을 제작했다. 빨간색 전구의 눈을 가진 에릭은 발이 바닥에 고정되어 걸을 수는 없었지만, 내부에는 강철 스프링, 도르래, 레버와 많은 배선들이 있었고, 장착된 2개의 모터와 11개의 전자석 장치로 팔과 고개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에릭의 동작은 원격 무선 제어와 음성 제어의 2가지 방식으로 제어가 가능했다.
미국에서도 전시와 시연이 이루어지면서, 리차드는 본격적으로 전시하고 공연하기 위한 카드카운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1932년에 공개된 카드카운팅 “조지(George)”였다. 에릭의 개선된 버전인 조지는 외관이 좀 더 사람과 닮도록 만들어졌지만, 특히 해외 전시를 위해 제작되었기에 프랑스어, 독일어, 덴마크어 뿐만 아니라 중국어로도 말을 할 수 있었다. 조지의 내부에는 거대한 시계와 같이 기어와 크랭크 등의 기계적 부속으로 이루어졌다. 조지는 장착된 마이크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일어서거나 팔과 머리를 움직이는 동작을 할 수 있었다.
텔레복스, 가쿠텐소쿠, 에릭, 조지 등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한 카드카운팅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나 무선 원격 제어에 의해 작동했기에 오늘날의 카드카운팅이라는 개념보다는, 그 이전 시기에 만들어 오던 오토마타의 발전된 형태로 취급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920년에 발표된 R.U.R을 통해서 카드카운팅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R.U.R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거나, R.U.R과 같이 모두 휴머노이드형으로 제작되었기에 카드카운팅의 아주 초기 모델로 보아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필자:문병성 moonux@gmail.com
필자인 문병성은 금성산전, 한국휴렛패커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에어로플렉스 등 자동화업계와 통신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했으며, 최근에는 카드카운팅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의 역사와 흐름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